2000년 9월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갔던 경북 김천의 임마누엘 보육원. 2015년 국가정책으로 인해 입양기관으로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곳은 58명(출산보호제로 태어난 6명 아기 포함)의 아이들의 생활터전으로 그대로 있었다.
임마누엘에서 어릴 적에 입양된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이제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곳에 가면 나의 흔적이 있으리라...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래도 기대감을 갖고 휴가를 내고 방문했다 .
27년전에 입양을 하려고 해요~라고 전화를 했을 때 응답해주셨던 그 권 *정 복지사님이 그 목소리 그대로 전화를 받아주셨다.
우리들의 방문계획을 너무 반가워해주셨다.

김정숙 전 원장님은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야한다고 입양에 문을 확 열어주신 분 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 적응을 어떻게 하는지 걱정하고 염려하셨던 그분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셨다. 그래도 당신이 입양으로 보냈던 아이 한명 한명을 보면서 기억하시고 으응~ 너 **구나 잘 생겼다. 예쁘다~를 하신다. 잘먹어서 잘 잘자라서 아이들 얼굴 빛깔이 좋은게 흡족하신 것 같았다. 말씀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신다 

청년입양인들도 각각 자신의 이곳에 온 소감과 이야기를 했다. 4살 6살 10살 13살 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입양이된 청년들이 낯선 가정으로 가서 적응하고 성장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인가, 청년들은 더 많은 기억이 생각하고 또 깊은 감회를 느끼고 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 원장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에 옆에 있어 주었던 어른들에게 깍듯이 예의바르게 자신들의 철없었던 시절 이야기도 해주어, 부족하고 서툴렀던 부모와 어른들을 감동시켰다. 





원장님이 하시는 임마누엘의 간단 연혁과 그곳 에서 선생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지를 들으면서... 그래... 한 인생이 보존되는 것은 홀로가 아니라 여러사람들과 함께 였다는 걸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남다흔 고통을 극복하고 멋지고 의젓한 모습으로 성장하였으니, 그 모습을 본 아이돌보기를 평생 업으로 삼고 있는 27년 전의 그 보육사, 복지사 샘들 에게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라.
그분들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자라서 온 입양보낸 아이들이 처음이다. 우리는 너무 가슴이 벅차다. 허긴 부모인 우리도 가슴 벅차긴 똑같았다.

아기때는 영아실에 있었고 그후는 큰언니 오빠들이 있는 생활관에서 자랐지 .....
2000년 9월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갔던 경북 김천의 임마누엘 보육원. 2015년 국가정책으로 인해 입양기관으로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곳은 58명(출산보호제로 태어난 6명 아기 포함)의 아이들의 생활터전으로 그대로 있었다.
임마누엘에서 어릴 적에 입양된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이제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곳에 가면 나의 흔적이 있으리라...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래도 기대감을 갖고 휴가를 내고 방문했다 .
27년전에 입양을 하려고 해요~라고 전화를 했을 때 응답해주셨던 그 권 *정 복지사님이 그 목소리 그대로 전화를 받아주셨다.
우리들의 방문계획을 너무 반가워해주셨다.
김정숙 전 원장님은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야한다고 입양에 문을 확 열어주신 분 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 적응을 어떻게 하는지 걱정하고 염려하셨던 그분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셨다. 그래도 당신이 입양으로 보냈던 아이 한명 한명을 보면서 기억하시고 으응~ 너 **구나 잘 생겼다. 예쁘다~를 하신다. 잘먹어서 잘 잘자라서 아이들 얼굴 빛깔이 좋은게 흡족하신 것 같았다. 말씀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신다
청년입양인들도 각각 자신의 이곳에 온 소감과 이야기를 했다. 4살 6살 10살 13살 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입양이된 청년들이 낯선 가정으로 가서 적응하고 성장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인가, 청년들은 더 많은 기억이 생각하고 또 깊은 감회를 느끼고 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 원장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에 옆에 있어 주었던 어른들에게 깍듯이 예의바르게 자신들의 철없었던 시절 이야기도 해주어, 부족하고 서툴렀던 부모와 어른들을 감동시켰다.
원장님이 하시는 임마누엘의 간단 연혁과 그곳 에서 선생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지를 들으면서... 그래... 한 인생이 보존되는 것은 홀로가 아니라 여러사람들과 함께 였다는 걸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남다흔 고통을 극복하고 멋지고 의젓한 모습으로 성장하였으니, 그 모습을 본 아이돌보기를 평생 업으로 삼고 있는 27년 전의 그 보육사, 복지사 샘들 에게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라.
그분들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자라서 온 입양보낸 아이들이 처음이다. 우리는 너무 가슴이 벅차다. 허긴 부모인 우리도 가슴 벅차긴 똑같았다.
아기때는 영아실에 있었고 그후는 큰언니 오빠들이 있는 생활관에서 자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