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입양 칼럼


입양에 대한 통합된 이해로 국내입양의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다양한 입양 이야기를 게재합니다.

내 딸들의 ‘친’부모

 

내 딸들의 ‘친’부모

유현미  

 

한 해 마지막날, 송구영신 예배드리러 나가던 막내딸이 ‘예배 끝나고 맥주를 한번 먹고 와도 되느냐?’고 묻는다. 셀프성년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후 맥주 직행이라니? 성경적으로 말이 안되지만, 20살되서, 어른 된다고 흥분해 있는게 귀여워서, 그러라고 했다. 기저귀 차고, 비척비척 걸어서 내 품에 안겼던 아기가 성년이 되다니...이리하여 길고 길었던 나의 미성년자 양육의 시절도 드디어 끝났는가, 친권자로서 모든 법적 권리와 의무도 이제 국가에 반납하게 된 것인가일말의 감동과 회한이 없을 수 없다. 황홀 무아지경의 행복부터 밑바닥 치는 통곡까지... 인생 온갖 찐맛을 다 본 맛보게 해준 딸들, 땡큐~ 


늦은 나이에 고만고만한 세딸의 부모가 되어 살아오면서 참 많은 것을 경험했다. 대개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겪음직한 일들이었지만, 그 중에는 입양가족이 아니었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일들도 적지 않았다.입양가족을 보통/정상가족(?)과 다르게 보는 ‘그 무엇’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시선 하나에 밤새 마음 앓이도 했었고, 쌍심지를 키고 투지에 불타기도 했었고...참아 넘기기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했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오면서, 굽이굽이 세월이 가면서, 점점 무던해지고, 무심해지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 사이에 세상이 좋아진건지, 반응하기에 지친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가족은 ‘입양’이라는 말 앞에서 거의 무감각한 경지(!)에 이르렀다. 얼마전에 누군가 어떤 모임에서 ‘우리 집 딸들이 셋 다 입양인데.. 이러구, 저러구’ 뒷담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 세 모녀는 동시에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뭐 뒷담까지 하시고...” “그러게, 그냥 앞에서 말해도 되는데.” 한마디씩 하며 키득거렸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도 나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있으니 그것은 바로 ’친‘이라는 음절의 접두어이다. ’친부모, 친자녀... 이 말들은 아직도, 매번 나를 예민하게 만든다.구체적으로 이런 장면이다. 우리가 입양 가정임에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자기 ’친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정말 대단하세요... ’ 그리고 또 누군가는 내 딸들을 촉촉한 눈으로 보며 이렇게 말한다 ‘친부모‘도 이렇게는 못할거예요”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칭찬이고 격려의 말이라는건 나도 안다.


그러나 ’친‘이라는 그 음절이 나를 난감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친’자식도 아닌 아이들과 ’친‘부모도 아닌 부모인 가족이라는건데 ... 그동안 우리집을 뭘로 생각하고... 이 분이 생각하는 ’친부모‘ 친자식‘의 반댓말(?)은 도데체 뭘까?”이런 생각을 삼키느라 얼굴이 경직된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수긍할 수도 없다. ’저도 제 자식이니까 키우지요‘ 애매하게 웃고 넘기지만 마음이 영 편치않다. 간혹 방송에서 한 입양인이 30년만에 ‘친부모’를 만났다는 감동의 사연을 보기도 한다. 방송은 ‘친부모’를 만난 입양인은 그리웠던 가족의 품에 안겨, 그렇게도 불러보고 싶었던 엄마,아버지를 부르고... 등의 장면과 함께 방송은 그들이 얼마나 닮았고, 보자마자 서로 얼마나 본능적으로 끌렸는지 전해준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몹시 불편힌 이유는 입양인이 낳아준 부모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친‘이라는 한 음절의 위력 때문이다. 핵심은 ’친‘이다. ’친부모‘를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친‘외에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것은 다 아무것도 아닌걸로 만들어버린다 


’’친‘부모란 누구이고, ’친‘부모에 대응하는 부모는 누구인가 - 정색을 하고 묻는다면 예상컨대 답은 뻔하다. ’친‘은 ’혈연‘이라는 통상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그러나 평균적인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친이 단지 ‘혈연’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어 어감의 ’친‘은 ’혈연‘과 ’진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혈연=진짜 라는 중첩적 의미이다.“네 부모는 너의 ’친‘부모가 아니고, 네 아이는 ’친‘자녀가 아니야.”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대사를 매일 들으며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입양가족이다. 이 대사가 담고 있는, 진짜 의미는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 ‘친’이란, 혈연, 진짜, 천륜이야. ‘친’부모만이 유일한 진짜 부모이다. 입양가족은 혈연이 아닌, 천륜은 아닌, 진짜아닌 가족이다” 그러니 ‘친’ 그 한음절이 우리 가족 근원을 부정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들을 때마다 금속성 마찰음처럼 신경에 거스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친’ 때문에 몹시 열받은 어느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친‘을 뭐라고 부르나 궁금해서 한영사전을 뒤져봤다. 영어권에서는 blood parents(혈연부모) biological parents(생물학적부모), birth parents(출생부모), natural parents(자연부모) 등으로 표기되있다 ’친‘에 해당되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영한사전에서는 이 모든 용어를 ’친’으로 번역하고 이렇게 주석까지 달아놓았다. 친부모 real parents어느 입양인이 “I want to find my biological parents.” 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것을 “나는 나의 생물학적 부모를 찾고 싶다”로 번역할 때와 “나는 나의 친부모(진짜부모)를 찾고 싶어요”로 번역 할 때 둘의 의미는 절대 같지 않다. 


한국어에만 있는 ‘친’이 무엇인지 한자사전과 법전도 찾아보았다. 한자어인 친(親)은 ‘친하다’ ‘사랑하다’ ‘가깝다’는 의미이다. 즉 ‘친’부모는 친하고 사랑하고 가까운 부모라는 의미이다. ‘친’이 접두어로 쓸일경우 친족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부계쪽 친족으로 제한되기도 한다 (친가/외가, 친조부모/외조부모...) 법전에서 ‘친’의 중요한 의미 또 하나를 발견했는데, "자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 (민법 제 913조)인 친권의 행사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구태어 ‘친부모’라는 말을 쓰고 싶다면 ‘친하고 가깝고, 법적으로 친족이고, 친권을 가진’ 입양부모가 ‘친‘부모에 더 합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부모는 그냥 부모라 불리는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부모의 유형(?)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우리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곳에 부모를 확인할 때 출생부모 / 법적부모 / 현재 동거하고 있는 부모(보호자) -–를 각각 기재하도록 세 칸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몇 종류로 나누건 중요한건 그 중 누가 진짜,real 부모라고 아이에게 주입,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친부모의 반댓말이 양부모가 아니다. 양부모의 대응되는 호칭은 생모,생부이다.민법, 입양특례법, 모든 법원 심사에서는 친생부모/친양부모라고 표기한다. 이때 친은 친권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행 친양자법에서는 양부모와 양자는 친자관계가 성립되면(가족법 제8616조) ‘친자’로서 모든 권리를 갖게 된다. 즉 우리 아이들도 ‘친자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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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명칭, 말은 그냥 기호가 아니다. 거기에는 뜻과 축적된 의미, 역사가 담겨있다 그래서 의미를 바꾸기 위해 호칭,명칭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청소부는 환경미화원으로, 파출부는 도우미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장애인은 장애우로 바꿔 부르다가 친구라는 의미의 장애우가   동정적이라는 지적으로 다시 장애인이로 변경되었다. 

1996년 전국의 모든 국민학교가 일제히 그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었다. 초등학교의 ‘국민’이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에서 나온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국가적 사업이었다. 막대한 예산은 물론,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치욕의 과거를 떨쳐내고, 국가적 의식을 발전시키는 역사적 발전으로 평가했고, 국민 모두가 동의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입양상담교육센터에서는 ‘연장아’를 ‘큰아이’로 바꿔 부르도록 노력하고 있다. 통상 ‘연장아’는 신생아기 이후 아동을 지칭한다. 그러나 ‘신생아입양’과 대응되는 ‘연장아 입양’은 신생아가 아닌, 입양하기에 늦은, 그래서 문제가 많은, 선호되지 않는, 예외적인 입양 등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의미가 축적되며 확산되어졌다. 실제로 6세에 입양된 한 아이가 심각하게 물었다고 한다 “나는 언제까지 연장아예요?” 아이는 ’연장아‘라는 호칭이 갖는 부정적인 시선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 꼬리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입양상담교육센터에서는 이런 문제에 도움이 되고자 ’연장아‘라는 어색하고 부정적인 용어 대신 ’큰아이 입양‘이라는 보다 자연스럽고 따듯한 호칭으로 바꿔부를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하면 아동발달 단계에 따라 영아기- 유아기-유년기-아동기..로 나누어 구분할 것을 제시했다. ’연장아‘나 ’큰아이‘나 같은 뜻 아니냐고 한다면, 유사한 의미일지라도 ’연장아‘에 축적되어 온 부정적인 느낌을 바꿔주자는 취지에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한번 굳어버린 용어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연장아‘가 학술적인 규정도 아니고, 법적인 용어도 아니건만  입양단체, 입양전문가, 활동가들 모두 이상하게(!) ’연장아‘를 고수한다. 그분들이 마이크도 쥐고 있고, 지면도 갖고 있고 교육도, 정책도 담당하고 있다. 그러면서 ’친부모‘ ’연장아‘ 같은 용어를 별 생각없이~!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고통에 대한 공감력은 전문성만큼 중요하다. 입양을 주제로 삼아 학위논문까지 쓰면서도, 친부모/양부모라고 호칭하고 ’연장아‘라는 국적불명 용어를 남발하는 전문가들의 입양인지감수성으로 인해 입양가족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호소하고 싶다.


 ’친부모‘’친자식‘’연장아‘라고 편하게 부르시는 분들게  제가 늦은 나이에 유아기, 유년기에 큰아이 딸 셋을 입양으로 얻었어요. 제 딸들이 연장아라는 이상한 호칭을 싫어합니다. 큰아이 입양이고, 3세, 6세에 입양되었다고 말해주시면 안될까요? 


입양에 대한 감수성과 인식을 바꾸는건 어렵지요. 그렇지만 말을 바꾸는건 인식을 바꾸는 것 보다는 쉬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앞으로 말만이라도 바꿔주세요.입양부모는 친부모의 반댓말이 아닌 것을 기억해주세요. 생부,생모/ 양부,양모 라고 하거나, 친생부모 /친양부모‘라고 짝 맞춰서 호칭해주세요. ’친부모‘라는 말을 꼭 쓰고 싶으시면 아이와 친하고 사랑하고, 양육권과 친권을 가진 부모에게 호칭해 주세요.

 

개인적인 사연입니다. 제 딸 중 하나의 낳아주신 엄마는 천국에 가셨습니다.  내가, 친엄마가 아니라고 하면 그 아이는 평생 친,진짜엄마는 없는 겁니다. 아이가 불쌍하잖아요. 제발 내 딸에게서 친엄마를 빼앗지 말아주세요

2023년 1월 15일